<씨너스: 죄인들> 공포와 음악, 상실과 구원이 엉켜 만든 '영혼의 명화'
김주하 기자
jokgunews@naver.com | 2025-06-05 16:29:39
- "가족이라는 천국": 해피엔딩보다 더 아름다운 엔딩
[슈퍼액션 = 김주하 기자] 처음엔 단순한 액션이 가미된 공포영화로 알고 영화를 감상하게 됐다. 뱀파이어가 나오고, 으스스한 분위기와 가벼운 주술이 있고, 긴장감도 묻어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작품이 단순한 액션, 드라마나 공포 장르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은 액션과 공포가 어우러진 장르라는 외피를 입었을 뿐, 그 안에는 상처 입은 공동체의 역사와, 무너진 가족의 기억, 그리고 인간적인 구원이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명화’ 었다.
"공포를 흉내 내지 않는다": 현실감 있는 뱀파이어와 진짜 무서움
<씨너스: 죄인들>에서는 뱀파이어가 우리가 흔히 아는 초자연적 존재처럼 날아다니지도 않고, 무적도 아니다. 그들은 적당히 강하다. 딱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의 괴물로 표현되어 영화에 집중도를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더 무섭게 다가온다. 관객은 그들이 주인공을 덮칠 수 있다는 공포를 단순한 판타지로 소비하지 않는다. 이건 현실적인 요소이자 "가능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공포는 단순히 신체적 위협에 그치지 않고, 그들은 흑인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와, 문화를 약탈하려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흑인의 음악, 블루스를 훔치고, 정체성을 삼킨다. 그건 문화적 전유이며, 실질적인 정체성의 침탈이자 약탈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뱀파이어는 육체보다 흑인의 정신을 물어뜯는다. 이 점이, 이 영화가 진짜로 공포스러운 이유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싸움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으로 한다": 절제된 액션의 존재감
액션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다. 특히 이 영화처럼 억압과 저항, 공동체의 결속을 이야기하는 작품에서 액션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로 표현된다.
<씨너스>의 액션은 많지 않지만, 그 존재는 결코 주변적이지 않다. 이 영화에서 액션은 저항의 상징으로 없으면 안 되는 필수 요소다.
그렇기에 영화의 속에 등장하는 액션신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만 사용된다. 액션은 인물의 감정에 봉사하며, 싸움 하나하나에 절박한 감정을 실어내는 저항이다.
백인 뱀파이어를 상대로 벌이는 흑인의 액션, 저항은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인 물리 법칙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액션은 관객에게 쾌감보다는 공감을 안긴다.
액션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정서를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러나 액션의 밀도는 전체적으로 억제되어 있고, 정밀하다. 그만큼 서사의 전면으로 나오지 않기에 영화가 가진 진중함과 명작으로서의 품위를 오히려 더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카메라는 감정을 따라간다": 오텀 듀랄드 아카파우의 시적 영상미
이 영화의 특별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텀 듀랄드 아카파우의 촬영에서 보여준 미장센에 있다.
<와칸다 포에버>에서도 인상적인 촬영을 선보였던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도 압도적인 시각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녀의 촬영은 멋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을 따라간다
빛과 그림자, 먼지 날리는 델타의 풍경, 그리고 블루스가 흐르는 공간 속 인물들의 눈빛. 모든 장면이 시처럼 구성돼 있다. 마치 회화 작품을 프레임마다 그려낸 듯한 감각. 그녀는 여성을 촬영하듯, 인물의 감정을 다정하게 안아주며 카메라를 움직인다. 공포마저도 아름다움의 틀 안에서 묘사된다. 영화를 보면 아름다운 영화로 느껴진다.
"가족이라는 천국": 해피엔딩보다 더 아름다운 엔딩
이 영화의 마지막은 결코 뻔하지 않다. 주인공은 현실에서는 이미 무너진 가족을 품게 된다. 죽은 아이, 멀어진 아내, 고통스러운 기억이였지만. 영화의 끝자락에서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앉게 되면서 평온을 찾는 듯 하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영화를 보면서 같이 느껴야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이다. 현실에서는 함께일 수 없었지만, 죽음 이후에야 비로소 완성된 가족. 그것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영혼의 엔딩'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씨너스>를 빛나게 하는 만든 연출의 미학 이다.
구경이 아닌 공감, <씨너스>는 명화다
이 영화는 단 한 번도 ‘명화’ 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는 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건 흑인들이 만들어낸 영화가 아니라 명화라는 것을. 억압받아온 역사, 후두(Hoodoo)의 영성, 블루스라는 고통의 언어, 무너진 가족 공동체. 이 모든 것이 장르의 안에 스며 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진실해서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씨너스: 죄인들>은 결국 구경거리가 아닌 공감의 명화다. 장르를 빌렸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과 고통, 기억과 구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감독 라이언 쿠글러(Ryan Coogler)의 인생작이라고 불릴만 하다.
현실적인 위협, 감정적인 싸움, 예술적인 연출, 그리고 마지막엔 영혼의 해방.
그래서 이 영화는 흥행했다. 놀라운 장면들 때문이 아니라, 진심을 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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